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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김해빈 시인,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2.05 15:42
  • 기자명 김해빈
▲ 김해빈 시인, 칼럼니스트
봄은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도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온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와 각도에 따라 지구의 기후가 변하고 그 변화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며 사람이 사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그런 변화를 계절이라 부르며 봄·여름·가을·겨울 사등분하여 삶의 방법을 달리하고 자연에 순응하던가 아니면 자연에 거스르는 작업으로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간다. 그것이 사람의 삶이고 지구의 역사는 그것의 반복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계절 중 봄은 가장 앞서 온다. 추위를 견뎌내고 새로운 삶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봄은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사람은 보는 것보다 느낌으로 먼저 알아채는 신비한 존재다. 그 느낌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수없이 반복되는 계절에 부딪혀 터득한 경험으로 형성되는 것인데 생존본능에 따른 위험에서 경각심이 겹겹이 쌓여 계절의 변화를 알게 된다. 그래서 봄은 사람에게 가장 큰 경사다. 이때를 맞이하여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새로운 설계를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봄은 축복을 가져왔다. 24절기로 나눈 계절의 변화를 제일 먼저 느끼게 하는 봄은 최고의 축복이라 믿고 경건한 자세로 맞이했다. 집집이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를 크게 써 붙이고 집안의 화목과 공동체의 합심, 그리고 개인의 번영을 빌었다. 사람에게 봄은 희망을 품게 하고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다짐을 준다. 그래서 4계절 중 가장 많은 행사를 하고 새로운 각오를 가슴에 깊이 새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자신에 대한 맹세다. 그러나 봄을 맞이하여 굳게 다짐한 맹세도 곧바로 잊고 평상시로 돌아가고 마는데 그래서 생겨난 말이 작심삼일이 아닌지. 자신에게 가장 민감하고 빈약한 부분을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든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짐을 하고도 지키지 못하는 것 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환경과 비교되는 사물이나 사람에 비교하며 수시로 변한다. 보는 것과 느끼는 것,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 등 남과 비교하여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인과관계는 아무리 크게 다짐했어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옛날부터 봄날의 약속이라는 말이 생겼다. 봄에 한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계절의 순환이 일정하지 않을뿐더러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간사하고 변화무상하여 환경에 따라 마음도 수시로 변한다는 뜻일 것이다.

벌써 입춘도 지났다. 흐르는 시간을 따라 또 하나의 봄을 맞이하는 것뿐이지만 이번에 맞이하는 봄은, 무엇인가 새로움을 가져다줄 희망의 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격동하는 변화 속에서 국제정세는 불안하여 나라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경제의 침체는 젊은이들을 거리에 내몰아 방황하게 한다. 또한 일터를 잃은 사람들의 발길이 도박장이나 일확천금을 바라는 복권으로 향하게도 한다. 이런 와중에 중심을 잡고 국민을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마저 번번이 약속을 저버리고 있어 실망은 쌓여만 가고, 자신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게 되어 희망은 없고 절망만이 보이는 때다.

그래도 봄은 온다. 아무리 강추위가 몰아치고 앞이 보이지 않지만 새봄은 오고야 만다. 얼어붙어 흐르지 않던 강물이 녹아 흐르고 그늘져 있던 땅에도 햇볕이 들어 새싹이 돋고 꽃이 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얼었던 마음도 눈 녹듯 하여 부디 빈부의 격차도 줄어들고 삶의 질도 높아져 누구나 평등한 삶을 누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글귀와 같이 그 뜻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 새롭게 맞이하는 이 봄에 어느 한 사람 빼놓지 않고 축복을 받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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