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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最高)와 자유

  • 기사입력 2018.03.02 11:14
  • 기자명 김해빈


▲ 김해빈 시인



‘사람 눈이 가장 높은 곳에 달린 이유는 최고를 바라기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다. 가장 높은 것을 원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을 잠시나마 잊으려는 우스개로 하는 소리지만 그만큼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물 중에 뇌를 가진 생물, 즉 동물은 뇌의 움직임에 따라 욕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연 속에 사는 짐승들도 먹이와 번식의 욕심으로 풍족함을 잊고 더 많은 것을 위하여 투쟁하다가 끝내는 종말을 앞당긴다.

동물 중에 뇌의 크기가 제일 큰 사람은 짐승과는 다른 번뇌라는 짐을 하나 더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으로 가진 숙명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당신은 욕심을 버렸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무소유를 주장한 법정 스님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많은 책을 출간하여 자신도 모르게 명성을 얻고 말았다. 그렇다면 사람의 욕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모든 욕심은 아는 것에서 온다. 이것은 학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무엇과의 비교를 하게 되고 여기에 학문의 성취도가 높아지면서부터 욕심이 더 많이 쌓이게 된다.

그렇다면 욕심 중 첫 번째는 무엇일까. 우선 먹는 욕심이 될 것이다. 대부분 생존을 위한 먹이의 욕심으로 많은 양을 쌓아놓고도 더 많이 가지려는 것은 공통적인 문제지만,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빼앗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먹이의 극복은 어떻게든 해결되는 것이 사람이 사는 사회다. 원시시대부터 먹을 것을 두고 싸워왔지만 본능적인 욕심이라 대부분 서로가 이해하고 배려한다. 하지만 날로 번식하고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러 엄청난 두뇌 싸움에 이르렀다. 바로 지식만큼의 성취욕이 문제이다.

다불구정(茶不求精)이라는 말이 있다. 차를 좋은 것만 찾지 않는다면 찻주전자가 마를 날이 없다는 말로 차맛을 너무 많이 알아버려 좋은 차가 아니면 끓이지 않으니 찻주전자가 마른다는 뜻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말로 술도 좋은 술만 찾다 보면 마시지를 못하고 소리가 잘 나는 악기지만 명품만 찾다가 한번도 연주하지 못하며 아무 옷이나 입으면 외출할 수 있는 데도 좋은 옷이 없다는 이유로 외출하지 못하여 밖과 단절되는 비극을 맞는다. 이것은 사람은 아는 만큼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을 합리적으로 펼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아는 만큼 고통스럽다. 차라리 모른다면 남과 비교할 것도 없고 욕심내지도 않는다. 또한 학문이 높을수록 번뇌는 커진다. 그것은 무엇이나 최고를 원하는 사람의 욕망 때문이다. 최고를 바라지 않는다면 자유로울 것이고 만족한 삶이 된다. 높이를 바라지 않고 보이는 데로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이 가장 행복하다. 그 행복을 위해서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은 그 지혜를 활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살아가면서 부단히도 향상과 알락만을 찾는다면 그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 마음과 몸의 피로를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삶은 결코 불행하다.

사업가와 정치인, 학식인과 비학식인, 가진 자와 못가진자 등 모든 것은 비교에서 오는 것이지만 알고 있는 양만큼 사람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자유를 원한다면 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고 명성을 원할수록 남을 높이는 자세가 절실하다. 더구나 현대는 모든 것을 드러내놓을 수밖에 없는 투명시대에 살고 있다. 이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욕심은 내려놓고 정신적인 자유를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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