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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간 그리고 교육

  • 기사입력 2018.04.11 09:37
  • 기자명 김해빈
▲ 김해빈 시인



역사 이래로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은 끊임없이 시행되었다. 가정과 학교, 선후배와 동료, 자신의 자각 등 많은 교육방법이 있고 여러 가지 여건에 의하여 사람은 지식이 쌓이고 그 지식에 의하여 사람의 행동을 한다. 한데 사람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인류가 처한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어사전에서 ‘사람’을 찾아보면 ‘두 발로 서서 다니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며, 문화를 누리고 생각과 웃음을 가진 동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인간(人間)’은 무엇인가. ‘직립 보행을 하며 사고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문명과 사회를 이루고 사는 고등 동물’로 되어 있다.

즉 사람 ‘人’자에 사이 ‘間’자를 쓰지만 사람의 뜻과 같다. 다시 말해 사람과 인간은 같은 말이다. 하지만 그 의미가 다른 것은 사람은 그냥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고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람이 사는 사회를 이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지구상에 동물은 많다. 그중 직립보행을 하며 말을 할 수 있고 글을 쓰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어 가장 상위의 동물로 칭한다. 그러나 다른 동물은 과연 말을 못 할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서로 통용되는 소리를 질러 의사표시를 하고 지역을 나누어 영역을 표시하며 서로 침범하지 않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다른 동물은 언어가 없다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사람도 처음부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어떠한 의사표시로 소리를 지르고 손짓 발짓을 해가며 소통하다가 약속 때문에 어느 소리는 무엇을 칭하고, 소리의 높낮이는 어떻게 하자는 약속에서 언어는 발생하였고 거기서 더 나가 상형의 문자를 만들어 의사소통하다가 글자를 만들어내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언어는 약속에 의한 소통이다. 사람과 달리 다른 동물은 아직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하여 단순한 소리로만 소통하는 것이다.

사람이 말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사람이라 칭하고 한 걸음 더 나가 집단을 이루어 인간사회를 만들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다. 단순한 동물에서 사람이 되기까지 뇌의 크기는 커졌고 뇌의 크기에 비례하여 학습에 의한 지식이 쌓여갔다.

그로 인해 지혜와 도덕과 인성도 안정되어 간 것이다. 인간이 되기 위하여 사람으로서 갖춰야 하는 사람의 길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람을 넘어 인간으로 발전되기 위한 과정이다. 상고시대부터 이러한 사상은 발전을 거듭하여 공자와 맹자 등 수많은 성자를 탄생시켰고 종교로 발전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가르쳤다.

하지만 현시대에 도저히 사람이라 불리지 못할 행동으로 인간사회에서 추방해야 할 사람이 많다. 친딸을 성폭행하는 짐승 같은 사람, 부모·형제를 해치는 패륜아,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독선과 아집으로 뭉쳐져 남을 해치는 등 사람이 만든 인간사회에서 사람이라 불리지 못할 만큼 극악무도(極惡無道)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가르치고 가르칠 수밖에 없다. 성직자라고 반드시 사람다운 사고를 하는 것만도 아니고 남을 가르친다고 다 바른 사람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사회’라고 하지 않고 ‘인간사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어주고 하나로 만들어 사람답게 이끌어가는 관계, 이것이 인간관계다. 그것을 위하여 학교가 필요하고 현재의 교육은 가정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상태는 어떤가. 상급학교를 진학하기 위하여 또는 좋은 성적으로 취직하던가 아니면 높은 지위에 올라 권력을 쥐려는 목적으로 오직 주입식의 교육만이 판친다.

이렇게 받는 교육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외면한 교육이 되고 만다. 범법자는 높은 권력자들에게서 더 많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상상을 초월한다. 요즘이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교육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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