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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팔기

  • 기사입력 2018.06.01 09:55
  • 기자명 김해빈


▲ 김해빈 시인/칼럼니스트


"터를 팔다“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젊은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터는 집을 지을 자리나 건물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터는 자신의 자리를 말하는데 즉 어머니의 자궁을 말한다. 내가 잉태되던 자리, 다시 말해서 자신이 살던 곳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자식을 중하게 여겼고 부의 기본으로 삼았다. 농경사회의 노동은 가족에게서 나왔고 노동의 대가만큼 토지의 확장은 보장되었다. 자식을 많이 두는 것을 복으로 삼고 정성을 다하여 자손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지 농경사회의 기반은 가족의 번성을 기초로 했다. 집약적 노동이 요구되는 사회는 가족이 중심이 되어 경작하고 번창하여 집단을 이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다. 그래서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을 "터 팔았다"고 했으며, 이것은 차례차례 내려 받기로 이어져 터를 많이 판 집안이 번성하여 부를 이뤘다.

한 나라의 인구는 부국강병(富國强兵)으로 가는 기초가 된다. 인구가 없다면 나라도 없을 것이고 설혹 나라를 세웠다 할지라도 금방 망하고 만다. 먹고 살기 위한 경제활동은 인구에서 비례하고 인구가 늘어날수록 경제부흥은 시작되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인구 증가율이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다. 몇 년 후면 현재의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고 하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국력이 약해져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현재인구는 5천 2백만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땅의 크기에 비교하여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 넘는 경제적 발전이 활발한 현 상태에서 보면 인구의 감소는 저소득 국가로 뒷걸음치게 될 이유가 충분하다. 이 현상이 지속된다면 자칫 절망의 길이 되고 말 것이다.

세계인구 추세를 보면 일본은 1억 2천 2백만, 프랑스 6천 6백만, 영국 6천 4백 7십만, 미국 3억 2천만, 터키 7천 9백만, 중국 14억, 인도 12억 등 주요 선진국의 인구는 저소득국가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온다. 같은 민족인 북한은 우리의 절반인 2천 5백만으로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 약 8천만 명에 이르러 세계적인 부강에 돌입할 수도 있겠지만 통일은 아직 멀기만 하다.

요즘 전국 어디를 가나 ‘터를 팔았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심지어 ‘집터를 팔았다’는 말로 부동산 거래를 말하는 것으로 굳어져 인구증가로 가는 고유의 말은 사실상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니 그 의미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인구가 8년 후에는 감소추세로 간다는 발표가 있기 전부터 우리는 인구감소의 징후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결혼적령기를 넘긴 젊은이가 집안마다 대부분 한 두 명이 있으며 결혼적령기가 20대에서 30대를 훌쩍 넘어 이제는 40대에 육박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가까스로 결혼한다 해도 출산은 엄두도 못 내거나 1명으로 그치거나 하는 정도다. 또한 결혼보다 직장이 먼저라는 불안감에 휩싸인 젊은 층이 가정을 이루려는 생각보다 자신의 안녕 만을 바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어 이대로 지속한다면 인구의 감소로 인한 위기의 사태는 머지않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나라의 부강은 인구수에서 온다. 개인 소득이 낮지만 인구의 증강으로 세계열강에 접어든 중국이 아니라도 선진국을 살펴보면 인구가 적은 나라는 없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감지하고 진작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인구증강 정책에 관심을 가졌으나 어떤 수단을 써도 아무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정치적인 수단으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떤 정책을 펼쳐도 백약이 무효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근본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이럴 때 우리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아름다운 말을 한 번쯤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터를 판다"라는 말은 참으로 아름답고 정감이 가는 말이다. 이런 고유의 말뜻을 살려 국민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면 은연중에 동생을 원하는 언니, 오빠, 누나, 형이 생겨나서 터를 많이 팔지 않을까 싶다.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사라져가는 우리말을 새겨봄으로써 인구증강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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