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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 위장결혼 사건' 백기완 재심서 39년 만에 무죄

재심 신청한 11명 모두 무죄…백기완, 무죄 소식 듣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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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목 기자
기사입력 2019/11/15 [17:42]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970년대 겪은 'YWCA 위장 결혼 사건' 재심에서 39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서울고법 형사4부(조용현 부장판사)는 15일 계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백기완 소장의 재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재심을 신청한 최열·이우회·고(故) 강구철 씨등 10명도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연로한 피고인들이 여러번 법정에 나오는 부담을 덜어주고자 첫 기일인 이날 선고까지 마쳤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의 계엄 포고(비상계엄령 선포)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고, 그 내용도 영장주의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한다"며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도 침해하니 위헌이고 위법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어 "계엄포고가 당초부터 위헌·무효인 이상, 계엄포고 1항을 위반했음을 전제로 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이 피고인들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판결 선고를 맺었다.

 

'YWCA 위장 결혼 사건'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려는 신군부 세력에 반발해 윤보선, 함석헌 등의 주도로 서울 YWCA 회관에서 결혼식을 가장해 펼쳐진 대통령 직선제 요구 시위를 말한다.이는 신군부 세력에 반기를 든 첫 군중 집회로 평가받는다.

 

백 소장 등 시위를 주도한 핵심 인물 14명은 당시 용산구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백 소장은 계엄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80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1981년 사면을 받아 풀려났다.

 

건강이 좋지 않아 재판에 출석하지 못한 백 소장은 무죄 소식을 듣자 "피해 당사자로서 그동안 겪은 정신적인 고통과 왜곡된 인권 유린의 현장을 잊을 수가 없고, 달랠 수가 없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통일문제연구소 측이 전했다.

 

그는 "형식적인 재판 절차로서만 끝낼 것이 아니라 권력을 담당했던 집권자들이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며 "다시는 끔찍한 고문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말끔히 청산해야 하고, 정신적인 피해도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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