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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총선, 유권자가 바꿀 수 있는 세상 열릴까?

  • 기사입력 2020.03.20 00:12
  • 기자명 이효상(칼럼리스트/근대문화진흥원 원장)

시인이 말했듯 4월은 잔인한 달인가? 우한코로나 사태로 국가적 재난가운데 빠져 있다. 국가적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경제는 기력을 잃고 바닥을 친지 오래고 맨 땅에 헤딩하고 있으며, 안보는 불안, 외교는 왕따이다. 거기에 방역실패, 마스크 대란을 보면 고민된다.

국민 대다수가 마스크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약국순례'를 하며 거리를 헤매고 있다. 대구의 눈물과 부부가 코로나에 걸려 남편이 사망했지만 장례를 치루지 못한 아내의 참담함, 마스크 하나도 제대로 살 수 없는 나라, 이런 정치 리더십으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국민들은 일상이 뒤틀리고 경제적 피해가 불어나는 고통의 터널에 갇혔다.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큰 고통이다. 집권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투쟁의 3류 정치, ‘정의’니 ‘공정’이니 ‘자유’니 하는 말은 이미 오래전 언어의 유희가 되었다.

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고민이 많아진다. 배신과 협잡의 정치판을 보며 꼭 찍어야 하는 정당도, 꼭 찍고 싶은 후보자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4월 총선은 21대 입법부를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선거다. 한 표로 4년 뒤 국가의 미래가 새롭게 바뀔 수도 있고 반대로 뒤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의 선택기준은 분명 ‘코로나 리더십’으로, 재난에 어떻게 대처 했는가 하는 것과 반드시 물갈이나 불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무서운 줄 모르는 정치에 찌든 직업적 정치인들을 가능하다면 퇴출시켜야 한다.코메디같은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

선거 때면 나타나 명함 돌리는 선거꾼이나 말 잘하는 아나운서, 목소리 큰 사람 뽑는 선거가 아니다. 총선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의 대변자를 뽑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치꾼’이 아닌 주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온 몸을 던지며 대구로 달려가 의료봉사를 한 어느 정치인을 보며 감동한 바 있다. 그와 같이 생명을 살리려 한 몸을 던져 헌신한 의료진의 봉사와 보건당국의 역할을 기억한다. 그들은 국민의 영웅이었다. 그들의 헌신으로 겨우 버티는 국가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기득권을 누리며 권력의 맛에 찌든 정치인들의 탁상공론도 지켜보았다. 구태 정치인들의 직권남용, 국가 재난앞에서 편가르기 패싸움 정치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 일깨워 주었다.

‘코로나 민심’ 앞에서 정당의 정책도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투표 전 후보자의 인물, 공약, 삶의 과정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한 표를 행사 할 작정이지만 가상현실 같은 상황이다. 매번 선거에서 공약이나 정책을 보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것 같고 지역이 천지가 개벽할 것 같아서 귀가 번쩍이고 마음이 설레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금새 아무 일 없었듯이 빈 공(空)약이 될 것이다.

각 정당의 공천은 그들만의 리그인가?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자를 최소한 걸러냈다고 하지만, 지역유권자와의 소통이나 공감없는 공천이다. 여론조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최종선택은 시민들의 몫이다. 전과 병역, 사생활, 막말 등도 검증하고 선택해야겠지만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경제위극 극복 대안제시 능력을 더 높이 주목하고 싶다. 후보자들이 마스크 사기 위하여 줄서 본적이 있는가?

한국교회나 ‘한국교회유권자연합’이 공명선거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지도하는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특정 정당 지지는 곤란하다. 훌륭한 인물이 선출되길 바라는 기도, 기독교적 세계관과 관점으로 정치보기,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설교, 또 하나님보다 정치인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마음 지키기, 가짜뉴스 생산하거나 유포하는 행위 자제,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과 후보자나 당선인의 공약 실천 유무 파악하기 등은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비례후보자들도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론이나 신앙의 자유까지 제한되는 상황에서, ‘예배중단’이나 ‘교회폐쇄’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 같은 오만한 후보나 정치권에 줄서기 보다는 해당 후보의 정책과 가치관을 검증하고 선택하도록 지역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쏟아내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 찬성, 반대하는 발언이 선거에선 경계의 대상이다. "우파 지도자가 당선돼야"라고 설교한 목사 12명이 고발당한 바 있다.

매주 칼럼애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메일이나 SNS 문자로, 온 오프라인 신문 지면에서 칼럼을 읽는 이가 많을 땐 25만명을 넘어서다보니 반응이 즉각적이다. 더 신중해지고 어느 교수처럼 ‘민주당 빼고’ 식의 정치적 칼럼을 쓰지는 못한다.

사실 4월 투표도 잔인하다. 전염병의 한복판에서 치러진다. 전혀 소통없는 선거, 후보가 누구인지, 투표소를 가야할지 줄서기도 부담스럽고 투표소 안에 들어가기도 꺼림직 하다.

투표율이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투표율이 낮으면 표의 왜곡현상이 생긴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대면접촉이 없는 선거를 치루니 선거가 사이버 게임같이 가상현실이 된다. 오랜 정치생활을 하였거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면 당연히 당선된다고 착각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투표독려로 투표율을 높여야겠지만, 코로나 위험으로부터 유권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투표소의 방역이나 소독과 더불어 현장 투표자 전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거나, 투표소를 최대한 늘려 분산시키는 방법도 고려돼야 한다. 가능하다면 교회가 주민들의 투표소로 제공되었으면 한다.

코로나로 느끼는 지금의 참담한 현실과 공포를 잊지 말자.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 교회, 교회가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면 유권자로서 바꿔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혁명’이 아니라 ‘투표’로 바꾸는 시스템이다. 한 표가 얼마나 엄중한지,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투표’뿐이다. 사실 단 한 표 차이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사례는 많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결정짓는 것은 ‘투표참여’가 답이다.

지금 이대론 더 이상 안 된다. (사회구조적 모순 앞에) 침묵하지 말고 외쳐라. 분노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참여하라. 그 어느 때 보다 한 표가 절실하고 중요하다. 표류하는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구할 것인가. 코로나 위기 가운데서도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한 표가 미래를 결정짓고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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