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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 ‘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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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해 문화재 전문기자
기사입력 2020-09-19

우리나라 전 국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 종류는 소나무와 해송(곰솔), 그리고 리기다소나무이다. 대왕송이나 황금소나무, 백송은 공원이나 특정한 곳에서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본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우리와 때어놓을 수 없을 만큼 우리 가까이에는 늘 소나무가 있었다. 땔감으로 부엌에 있었고, 출산의 기쁨으로 대문에 있었고, 초례상에 있었고, 죽어서도 소나무는 곁에 있었다. 십장생에도 소나무가 있었고 옛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에도 소나무가 있다. 생활의 어느 곳에서도 소나무를 볼 수 있지만, 흔하게 볼 수 없는 소나무의 한 종류가 있다.

 

이 소나무를 ‘백송(학명; Pinus bungeana Zucc.)’ 또는 ‘백피송’, ‘백골송’, ‘사피송’, ‘반룡송’ 등으로 부른다. 북한에서는 수피가 흰색이라서 ‘흰소나무’라 부른다.

 

▲ 서울 조계사 백송(천연기념물 9호)  


우리나라에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백송은 ‘서울 조계사 백송(천연기념물 제9호), 고양 송포 백송(천연기념물 제60호), 예산 용궁리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 이천 신대리 백송(천연기념물 제253호) 등이 있다.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600년 전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졌던 나무이다. 수피가 소나무와 달리 밋밋하고 회백색으로 양버즘나무의 표피처럼, 고기비늘처럼 벗겨지는데 그 무늬가 얼룩무늬 군의 전투복처럼 얼룩이 생기기도 한다. 유목일 때는 수피의 색이 푸르스름하면서 흰빛을 띠나 차차 성목이 되면서 둥글게 벗겨져 흰색을 띠게 된다.


잎은 리기다소나무처럼 3개가 한 조가 되며 짧은 날개가 있다. 꽃은 5월에 피며 암수한그루이며 암꽃은 난형, 수꽃은 장타원형이다. 열매인 솔방울은 난형이고 50~60개의 실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편은 성숙하면 갈색으로 변하고 종자만 떨어져 나가 구과만 가지위에 남는다. 종자는 난형으로 짧은 날개가 있다. 백송은 소나무처럼 자라지 않는다. 특히 어릴 때의 자람은 느리다. 10여 년을 기다려도 키는 한 뼘 남짓하다.

▲ 서울 재동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 


서울의 재동 헌법재판소 건물 뒤편에 수피가 흰색을 가진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이 있다. 이 백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6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집권 과정을 지켜보았던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안동 김씨의 세도를 종식하고 왕정복고의 은밀한 계획이 이 백송을 바라보이는 신정왕후의 사가 사랑채에서 진행됐다. 오직 백송 수피를 바라보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백송의 밑동이 별나게 희어지자 개혁정치가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이 백송은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어느 사신이 가져다 심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국이 원산지인 백송이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서울에 백송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백송도 고종 때의 개화파의 선구자 박규수의 집이었다. 이것은 중국과의 교류를 했음을 증명하는 양반 가문의 증표이다.


백송의 수피는 연한 녹색이다가 나이가 들면서 흰색이 짙어진다. 회청색에서 회백색으로 변해가는 과정 모두가 분청사기를 보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민족주의 사학자인 문일평은 백송의 가치를 뒤늦게 깨닫고 ’백송이 가치’를 썼다. 푸른 솔잎과 하얀 무늬가 햇살을 받아 빚어내는 색채 대비를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다. 백송의 나이대로라면 단종 1년에 벌어졌던 계유정난의 참상도 목도했을 것이다. 김종서의 집이 있던 재동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피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재를 뿌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마을 이름이 ‘잿길’로 바뀌었고 오늘날 재동의 유래라고 한다.


그 후 백송이 있는 자리는 박규수의 사랑채가 되고, 경기여고에서 창덕여고가 되고 또다시 지금은 헌법재판소 건물의 앞뜰도 아닌 뒤뜰 높고 불안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백송은 통인동 백송을 대신해 최고령 백송의 타이틀을 넘겨받았다. 국내 최고령 백송이었던 통인동 백송은 현재는 밑동만 남아 생명을 잃고 말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천연기념물로 되었고, 광복 후 1962년 말에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으나 1993년 3월 23일 천연기념물로 해제되는 운명을 맞는 날까지의 많은 고초를 치러야 했다. 1990년 7월 13일, 폭우를 동반한 돌풍에 쓰러진 백송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청와대 근처에서 자라는 백송이 죽음은 불길한 징조라 하여 살려보려고 애썼다. 서울시에서는 ‘백송회생대책위원회’까지 구성되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이듬해 봄에 싹이 나면서 살아날 조짐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결국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면서 1993년 5월 13일에 줄기가 잘려 나가 지금의 흉측한 모습으로 섞어가고 있다. 그 후 나이테를 조사한 결과 수령이 600년은 족히 넘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타이틀을 넘겨받은 서울 재동 백송은 국내에서 가장 수피가 희며, 마치 하늘로 비상하는 두 마리의 백룡에 비유된다. 늘 누군가의 승리를 예견하듯 ‘V’를 그리고 있다. 줄기를 지탱하는 받침대가 세워져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약 500m 거리 조계사 경내에 백송(천연기념물 제9호)이 자라고 있다. 백송의 나이는 약 500살로 추정하고 있으며 대웅전 동쪽에서 위치한다. 조계사를 자주 참배한 불자라면 한 번쯤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백송은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백송이 있는 한쪽은 불자들이 오가는 통로이고, 다른 한쪽은 건물에 인접해 있어서 백송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하고 생육상태도 양호하지 않다. 대웅전 방향의 가지에는 버팀목을 받아 두었다. 또한 줄기의 상처 부위가 썩어가기 때문에 1979년 외과수술을 실시한 결과 수세는 좋아졌으나 수형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여 있는 상태이다.

▲ 고양 송포백송(천연기념물 제60호)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고양 송포 백송(천연기념물 제60호)’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백송을 옆에서 보면 마치 부챗살을 펼쳐 놓은 것 같으며, 다른 백송에 비해 수피가 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 백송이 자라게 된 연유는 조선 선조 때 유하겸이라는 사람이 중국 사절로부터 백송 두 그루를 받아 한 그루는 이 마을에 살고 있던 탐진 최씨 종중에 준 것이 지금의 백송이고, 또 한 그루는 조선 세종 때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할 당시 그곳에서 근무하던 최수원 장군이 고향에 오는 길에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 나무가 유하겸에게 준 나무라면 백송은 400살 정도이고, 최수원의 나무라면 550살 정도가 된다. 마을 사람들은 중국에서 온 나무라 하여 ‘당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밑동에서 올라온 가지는 9개로 다시 여러 개의 가지를 내어 풍성한 수형을 가졌다.

 

▲ 이천 신내리 백송(천연253호)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신내리에도 백송(천연기념물 제253호)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 나무도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준 나무이다. 나이가 약 230살 정도이며, 묘 앞의 비탈면에 자라고 있다. 밑동에서 바라 두 개의 줄기가 V자를 이루며 자랐는데 남쪽의 줄기에는 많은 가지가 나왔으나 북쪽의 줄기에는 가지가 많지 않지만, 나무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과거에는 전체적인 나무 모양이 반원형을 이루어 아름다웠으나, 지금은 상층의 가지들이 부러져서 수관의 한쪽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옛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200년 전인 조선 시대에 전라감사를 지낸 민정식의 할아버지 민달용의 묘소 앞에 심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예산 용궁리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  


충남 예산군 신용면 용궁리에 천연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된 ‘예산 용궁리 백송’이 자라고 있다. 이 백송은 나이가 약 200살 정도로 추정하며, 줄기가 밑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두 가지는 죽고 한 가지만 남아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백송은 추사 김정희 선생과 관련이 있다. 추사는 조선 순조 9년(1809) 늦가을, 24살이 된 청년 김정희는 아버지 김노경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북경을 가게 되자 수행원이 되어 따라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필통에 넣어서 와서 1810년 3월 중순 어느 날 예산의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영의정을 지낸 고조할아버지 김흥경의 묘소를 참배하고, 가져온 백송을 정성껏 심는다. 그 백송은 오늘날도 묘지를 지키고 있다.


우리 땅에 자라고 있는 백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것 외에도 지정이 취소된 백송도 있었다. 창경궁 춘당지 남쪽에 일제강점기 때 심은 세 그루의 백송이 있고 홍화문에 들어서 우측에 광덕문 지나 초입에 여러 그루의 백송이 자라고 있다. 또한,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에도 약 200살의 백송이 있었으나 2005년 8월 19일에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었다. 2002년 여름의 호우와 2003년 여름의 저온 현상 때문에 가지가 말랐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며, 중국과의 교류를 알려주는 나무로써 문화성이 있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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