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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진단] “끊임없는 산재 사고, 특단의 대책과 인식 전환 절실”

평택항 이선호 씨 사망 사고로 산재 논란 재점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되지만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논란
전문가·시민사회, "근본적 문제 해결 위한 대책 마련" 주문

  • 기사입력 2021.05.19 17:31
  • 기자명 김종대 기자
▲ 시민들이 평택역에 설치한 고 이선호 씨 분향소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송구스럽다.”(문재인 대통령)

“일하러 갔다가 일 마치고 집에 가는 사람들은 재수가 좋은 사람들이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은 재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게 오늘날 산업 현장의 모습이다. 우리가 살려고 직장에 가는 것이지 죽으려고 가는 건 아니지 않나.”(고 이선호 씨 부친)

지난 4월 22일 비보가 전해졌다. 이선호 씨가 평택항 개방형 컨테이너 내부 뒷정리 도중 사망한 것. 당시 이 씨는 무게 300㎏가량의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지지대에 깔렸다. 올해 나이는 23세. 청춘의 꿈이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안타깝게 저물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주요 인사들이 일제히 조문을 가고 시민사회는 애도를 표하고 있다. 정부는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 산재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자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는 산재 사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안전수칙 미준수에 산업현장은 ‘죽음의 장’


 

19일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 이 씨의 빈소. 이날 이 씨를 추모하기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수행할 때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씨의 사고 당시 현장에는 배정되지 않았다. 특히 고용노동부(노동부)에 따르면 원청 업체는 작업계획서 작성 등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이 씨의 부친 이재훈 씨는 “기업이 오직 이윤만 창출하기 위해 (안전관리에 드는) 돈 십만 원 아끼려는 와중에 제 아이는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면서 “다시는 이 땅에 사람을 업신여기고 자기 사리사욕만 챙기려고 하는 기업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지난 14일에는 강원 동해시 소재 시멘트 공장에서 협력업체 소속 60대 크레인 기사가 사망했다. 동해경찰서와 강원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42분께 삼화동 쌍용양회 시멘트공장에서 천장 크레인이 10m 높이에서 추락, 크레인 기사 김모(63) 씨가 부상을 당한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김 씨는 크레인으로 부원료를 컨테이너 벨트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김 씨는 협력업체 소속으로 동료 3명과 함께 1개 조를 이뤄 3교대 근무했다.

또한 지난 8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1열연공장 3호기 가열로에서 4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고가 각각 발생했다. 지난해 4월에는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고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정부 산재 발생 때마다 대책 마련하지만 산재는 지속 


 

정부는 산재가 발생할 때마다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이 씨의 사망사고 이후에도 정부는 ‘평택항 사망사고 관계 기관 합동 TF’를 구성했다. TF는 평택항 사망사고의 진상 규명과 유사 사고 방지를 위한 회의체다. 노동부와 해양수산부(해수부), 경기도, 평택시, 경찰청, 안전보건공단 등이 참여한다. 

노동부는 이 씨의 사망사고 직후 지난 4월 26일부터 27일까지 사고 현장을 대상으로 특별감독을 실시했다. 안경덕 노동부 장관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에 대해 엄중 처벌을 하겠다. TF를 통해 유사 사고 재발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수부는 오는 28일까지 전국 5대 컨테이너 항만 하역장을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안전조치 실태를 점검한다. 문성혁 해수부 장관은 “이처럼 안타까운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해야 한다”며 “작업매뉴얼은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 안전 수칙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현장에 안전 위험 요소는 없는지, 기본부터 꼼꼼히 따져 미비한 점들은 과감히 바꾸고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도 중대 재해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감독이 실시된다. 특별감독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주관으로 오는 28일까지 계속된다. 특별감독에서는 ▲대표이사·경영진의 안전보건 관리에 대한 인식·리더십 ▲안전관리 목표 ▲인력·조직, 예산 집행체계 ▲위험 요인 관리체계 ▲종사자 의견 수렴 ▲협력업체의 안전보건 관리 역량 제고 등 6가지가 중점 점검된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을 비웃듯이 산재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에 따르면 삼표시멘트의 산재 사망사고는 2019년 1건, 2020년 3건, 2021년 1건 등 5건이다. 민주노총 강원본부는 “노동부가 지난해 8월 특별감독으로 적발한 사측의 위법행위는 471건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였고, 어떻게 개선됐는지 알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도 지난 8일 산재 사망사고에 앞서 지난 2월 작업 도중 노동자 1명이 철판에 부딪혀 숨졌다. 지난 5년간 현대중공업에서 20건의 중대 재해가 발생했다. 물론 노동부의 특별감독 이전 중대 재해가 발생했지만, 현대중공업의 중대 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5인 미만 사업장 산재 사망 최다···중대재해처벌법 우려 '여전'


 

산재 사고 사망이 계속 발생하자 국회는 지난 1월 본회의를 열어 찬성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재적 의원 266석)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을 의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형이 부과된다. 

적용 대상은 5인 이상 사업장이다.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일로부터 3년 뒤에, 다른 사업장은 공포일로부터 1년 뒤에 시행된다. 즉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일제히 적용된다. 

문제는 5인 미만 사업장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 사고 사망 건수가 전체 사업장의 35.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의 ‘2020년 산재 사고 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총 882명이다. 전년보다 27명(3.2%) 증가했다. 특히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5~49인에서 402명(45.6%)이 사망한 가운데 5인 미만에서도 312명이 사망, 전체의 35.4%를 차지했다. 또한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5~49인의 경우 43명, 5인 미만의 경우 11명 증가했다. 반면 50~299인에서는 131명(14.9%), 300인 이상에서는 37명(4.2%)의 사고사망자가 발생해 전년 대비 각각 16명, 11명 감소했다. 

또한 지난 1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국민의 건강 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 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 개발-노동자 건강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업무상 사고 발생률은 사업체 규모가 커질수록 낮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인구 1만 명당 115명으로 가장 높았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30명으로 가장 낮았다.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률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가장 높았다.

이처럼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을 비롯해 산재 사고가 최다 수준을 기록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보완 없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면 5인 미만 사업장이 안전사고 사각지대에 방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장 중심 안전대책 강화와 안전에 대한 인식 전환 절실


정부의 대책 마련에도 불구, 산재 사망 사고가 되풀이되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도 불구, 우려가 여전하다.근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누군가가 또 다시 산재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에 산재 예방을 위한 법 개정과 처벌 강화, 인식 전환 등이 요구된다.    

정연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노동 현장의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산업안전법과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조항을 개선하고, 노동안전보건에 관해 강력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아프면 쉬고, 아파도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청년유니온은 "모든 반복되는 죽음 뒤에는 제도적, 구조적 부조리가 자리하고 있다. 평택항에서 사망한 청년 노동자 또한 그러한 구조적 부조리의 희생자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사망사고 속에서 시민사회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경고했고, 불법적인 하도급에 대해서도 감시를 요구했다"며 "하지만 국가와 제도는 이를 외면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더해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각지대 철폐와 안전 기준 강화, 무엇보다도 제대로된 감시와 처벌을 통한 구조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 TF는 지난 17일 1차 회의를 열고 노동부로부터 산재 예방을 위한 정부의 활동을 보고받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준비 과정을 포함, 현행 제도를 점검했다. 

이날 회의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준비과정 및 산업안전법(산안법) 시행령 점검 ▲근로감독관 확충 방안 검토 ▲노동현장과 기업의 의견 수렴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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