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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진단] “갑질로 멍드는 대한민국, 갑질 근절해야 공정·선진사회 실현”

직장 갑질부터 입주민, 고객, 주차 갑질까지 각양각색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됐지만 갑질행위 지속
법적·제도적 기반 강화와 조직 문화 변화, 인식 전환

  • 기사입력 2021.06.01 16:45
  • 기자명 이창준 기자
▲ 고(故) 최희석 경비노동자 1주기 추모문화제[촬영 문다영]

갑(甲)질로 대한민국이 멍들고 있다. 갑질은 계약 권리상 갑을(甲乙) 관계에서 상대적 우위의 ‘갑’과 특정 행동을 폄하, 일컫는 접미사 ‘질’의 합성어다.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에 갑질은 대한민국이 공정사회,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근절할 적폐다. <한국NGO신문>이 대한민국 갑질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갑질 근절 방안을 모색했다. 


직장 갑질부터 주차 갑질까지 갑질 만연 


 

최근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 A씨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A씨 가족은 상사의 폭언 등 갑질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A씨 가족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 오전 A씨는 동료 학예사들과 함께 상사의 호출을 받고 한자리에 모였다. 학예실 관리 비품이 미술관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기 때문. 당시 허태정 대전시장의 미술관 방문이 예정됐다. 

이에 A씨는 상황을 설명했다. 평소 비품들은 미술관 계단 밑 창고에 보관됐지만 미술관 가스 설비 공사로 창고가 폐쇄, 공사 인부들이 임시로 밖에 꺼내놓았던 것. 하지만 A씨의 상사는 이를 무시했다. 

A씨 남편은 “아내가 비품이 밖에 나와 있는 상황 등을 설명했다. 간부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고성과 폭언을 내뱉으며 학예사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상사의 폭언 이후 A씨는 호흡 곤란과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 5월 10일 강북구청 앞. 시민단체들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파트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의 1주기 추모 행사가 진행됐다. 최 씨는 지난해 4월 아파트 입주민 B씨와 주차 문제로 다툰 뒤 지난해 5월 초까지 지속적으로 B씨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 심지어 B씨는 최 씨를 경비원 화장실에 감금한 채 12분간 구타하고 사직을 종용했다.

결국 최 씨는 “더는 나와 같은 사람이 없게 해 달라”고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후 본격적 수사가 이뤄지면서 B씨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 현재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또한 지난 5월 4일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보배 형님들 또 X치게 하는 벤츠가 나타났네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인천 송도 소재 아파텔이라며 사진 4장을 글과 함께 올렸다. 사진을 보면 주차장 차량 통행로에 벤츠 차량이 주차됐고 벤츠 차량 앞 유리 메모지에는 “긴말 안 한다. 딱지 붙이는 XX 그만 붙여라. 블랙박스 까고 얼굴 보고 찾아가서 죽이기 전에. 주차 공간을 더 만들든가. 허리디스크 터졌다”고 적혀 있었다.


갑질 예방 대책에도 갑질은 현재진행형


이처럼 대한민국 사회에는 갑질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직장 갑질부터 입주민 갑질, 주차 갑질까지. 대기업의 하청업체 갑질과 고객 갑질 등도 논란의 대상이다. 사실 갑질을 유형화하면 무한히 확장된다. 

그렇다면 갑질의 원인은 무엇일까? 국무조정실이 알앤알컨설팅에 의뢰해 지난해 11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전국 19세∼69세 1500명을 대상으로 갑질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갑질 원인 1순위로 ‘권위주의 문화’(40.7%)가 꼽혔다. 이어 ‘개인 윤리의식 부족’(25.4%), ‘가해자 처벌 부족’(18.1%), ‘제도상 허점’(13.5%) 순이었다.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주관의 생활적폐대책협의회는 공공·민간 분야 ‘불공정 갑질 관행’ 근절을 위해 법령 개정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생활적폐대책협의회에는 권익위와 관계부처가 참여한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대표사례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따라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가 금지되고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문제는 직장 갑질이 현재진행형이다. 실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 지난 3월 17일부터 23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법 시행 이후 직장 갑질이 줄어들었느냐’는 질문에 20대 응답자의 51.8%와 30대 응답자의 49.0%가 ‘줄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32.5%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무색한 현실이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 10개월이 됐지만 여전히 ‘꼰대 갑질’이 줄지 않고 있다”면서 “상명하복을 미덕으로 생각해온 60∼70년대생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90년대생 회사원들에게도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라며 갑질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비원 대상 입주민 갑질도 마찬가지다. 이오표 성북구노동권익센터장은 “여러 활동가의 도움으로 최희석 씨는 산재를 인정받았고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특별히 더 나아진 것은 없다”며 “지금도 경비원에 대한 갑질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센터장은 최씨의 유족을 도와 산업재해 신청을 담당했다.


법적, 제도적 기반 강화···조직 문화 변화와 인식 전환도 절실


“직장 갑질 금지법이 도입된 지 2년이 다 돼가지만 직장 내 괴롭힘도 있고 법·제도의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지속적 예방 교육을 통해 인식을 전환하고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박연정 권익위 청렴연수원 전문강사)

“제2의 최희석이 나오지 않도록 갑질하고 있는 분들은 멈추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달라.”(최희석씨의 친형 최광석씨)

직장 갑질이 계속되는 이유로 갑질 신고에 대한 불이익이 꼽힌다. 직장갑질119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8%만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회사나 관계기관에 신고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신고를 했다고 응답한 경우 71.4%는 피해 사실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67.9%는 신고 후 근무조건 악화나 따돌림,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겪었다.

직장인 C씨는 “상사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해 부서장과 대표에게 조치를 요구했다. 그런데 신고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고 동료들이 묵인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더욱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D씨는 “직장 갑질 증거를 모아 신고하자 회사 측에서 연고가 없는 먼 지역으로 인사발령을 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갑질 근절을 위해 법적·제도적 기반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갑질 신고에 따른 불이익이나 보복을 방지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 제76조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신고 후 ‘보복 갑질’에 지친 피해자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용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지만, 근로감독관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기 전까지는 불리한 처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적·제도적 기반 강화 차원에서 조사기관의 시각 변화를 촉구했다.

법과 제도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직장갑질119는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갑질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괴롭힘 사건이 발생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고 갑질 예방 교육을 시행, 민주·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경비원, 하청업체, 고객 응대 직원 등은 필연적으로 을의 위치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보호 대책과 사회적 장치가 필수다.

특히 전문가들은 직장 갑질뿐 아니라 입주민 갑질, 주차 갑질, 대기업 갑질, 고객 갑질 등 각종 갑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식 전환을 주문한다. 국무조정실의 조사에서 갑질 원인 2순위로 ‘개인 윤리의식 부족’이 꼽힌 것도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즉 상대방을 우월적 지위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 인격체로서 존중·배려하는 선진의식이 중요하다. 

이건리 전 권익위 부위원장은 “사회 구성원 모두 갑질 근절을 위한 정부의 정책과 제도를 적극 실천하기를 바란다”며 “무엇보다 상호 간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비로소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갑질 관행이 사라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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