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사는 의료원을 폐쇄하고 무료급식을 거부(비난이 쇄도하자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선회했지만), 민심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반해 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우, 의료원을 건립중이며 전국 최초로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을 설치, 무상급식과 무상교복까지 제공하는 등 경남도와 정 반대 시정을 펼치면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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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폐쇄에 대한 홍지사와 의료원노조 간의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의료원을 폐쇄한데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고 있다. 기자는 두 지자체장의 도정과 시정에 관해 이 정도의 문제 제기에서 그치려 한다.
기자가 정작 관심을 갖는 부분은 ‘리더의 정치 철학’이다.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제도는 ‘공공선’을 위한 인간 의지의 산물이며 약속으로 공동체의 생명은 바로 ‘공공성’의 담보에 있다. 요즘 성남시와 경남도의 여러 현안에 관한 정책을 두고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는 정책이나 제도가 지자체장의 의지와 철학에 따라 공공성에서 일탈, 국민에게 폐해를 끼칠 수 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자체장의 행정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정치행위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리더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궁극적으로 권력을 추구하게 되며 이는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방법론으로 결론부터 말한다면, 홍지사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지사를 지켜보노라면 그는 정치의 궁극적 목적인 공공성보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도지사 개인의 권력욕을 성취하려는 듯 보인다. 정치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가려운 등을 굵어주는 것이 정치이다. 홍지사의 경우, 이 점을 소홀히 함으로써 경남도민들의 민심과 유리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반대로 이재명시장의 경우, 정책의 최우선을 '공공성'에 맞추고 있는 점이 홍지사와의 현격한 차이로 보인다. 정책에서의 공공성의 확보는 특히 저소득 소외계층 주민들의 차별 없는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게 되고, 의료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폐해로부터 소위 안전망을 구축하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 같은 효과는 (설사 이재명시장이 권력을 원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를 권력에 다가서게 한다. 이 땅의 정치가 오늘의 현실처럼 퇴행적이며 비극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공익에 봉사해야 하는 권력을 개인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주인인 국민들의 의사에 반한 권력은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영속성을 갖지 못하며 비판받아야 한다.
또 하나, 이재명의 정치행위에 있어 홍지사와 대비되는 특별한 점은 그의 정치철학에는 바로 '사회정의'라는 개념이 강하게 용해되어 있음을 본다. 비단 행정부문에서 뿐만 아니라 정권의 비이성적 종북몰이에 대해서도 그는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부끄럽게도 지구상 마지막 분단지역으로 남아 세계적 비난과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반통일적 종북몰이는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에게 ‘종북’이라는 주홍글씨를 덧칠하려는 모든 시도가 그의 단호함 앞에 모두 실패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신망을 잃고 있는 야당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정의’란 것이 왜 그리 중요하냐고? 불과 몇 년 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짧은 기간에 100만부가 팔려 나갔다.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했다. 이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우리 사회가 '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얘기다.
'87년 체제'를 획득한 국민들은 적어도 '정의'를 실현했다고 보았지만, 이명박의 극우보수 정권 출범 후, 우리는 비로소 이 땅에서 '정의'가 사라졌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정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구성하는, 마치 신체의 척추와 같으며 공동체 구성의 기저부를 구성하는 뼈대이기 때문이다.
이시장의 정책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성남시가 추진하는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의 경우, 기존의 일반 산후조리원들과의 ‘경쟁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협력과 공생방안’을 통해 주민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 우려 또한 어쩌면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은 성남시가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을 설립함에 있어 민간산후조리원 이용 시민이나 산후조리원을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도 1인당 50만원을 지원하도록 하는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배제'가 아닌 '상생'으로 ‘공공성과 정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못해도 성남시는 한다’는 다소 도발적인 슬로건 또한 이시장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시대의 ‘모난 돌’, 이재명시장의 ‘거대한 실험'은 괄목할만 하고 큰 의미가 있으며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거나 '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갖는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고려할때, 국민의 입장에서는 ‘모난 돌’인 이재명시장이 정(釘)에 맞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아가 깨어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그 같은 모난 돌이 정을 맞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